‘좌절유발작’ <한공주>, 그래서 간과할 수 없는!

Category : Column, Featured News, Hurkie’s n Goodies | 2014/05/06 | by. hurlkie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실재했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한공주>의 열일곱 소녀는 담담하게도 말했다.

하지만 소녀는 등 떠밀려 자신이 살던 집과 학교를 떠나 낯선 곳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지인들의 연락을 피해야 했으며 당당하게도 불륜 중인 前학교 교사의 어머니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됐다.

소녀의 이름은 한공주(천우희), 흔히 집안에서 사랑받는 딸을 부르는 호칭을 이름으로 가졌지만 그녀의 운명은 이름과는 정반대다. 차라리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며 있는 대로 흐트러지며 그 아픔을 분노로든 방황으로든 표출했다면 영화 속 소녀가 좀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그녀의 일상은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하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처럼 복수를 하겠노라 절망을 표현하고 기꺼이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돼줄 아버지가 아니다. 그녀의 아픔을 보듬고 다독일 엄마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사는 게 바쁘고 힘겨워 3년 만에 만난 딸의 등을 서둘러 떠미는 엄마에 한 마디의 투정도 하지 못했다. 술 마시며 한숨을 쉬고 주정을 하는 것으로 분노하면서도 결국 돈의 유혹에 무너지고 마는 아빠가 있을 뿐이다. 

덤덤한, 그래서 더 아픈

소녀는 엄연히 피해자다. 그 후유증으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산부인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살갑게도 다가오는 친구들을 밀어내야 한다. 그들이 몰래 찍는 사진이나 동영상에 과민반응하면서도 부도덕한 어른들의 관계에는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하지만 수업 중 갑자기 들이닥쳐 합의를 요구하거나 “너 때문”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수십 명의 가해자 부모에 미성년인 소녀는 다시 한번 발가벗겨져 세상에 내던져진다. 의지할 곳은 점차 사라져간다. 소녀는 어른인 교사, 아버지의 말을 얌전히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방관자일 뿐이다.

소녀에게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합의서에 사인을 받아 이 사태를 만든, “아빠만 믿으라”는 친부의 전화 너머로는 흥청거리는 술집의 소음들이 전달된다. 그나마 발 벗고 돕던 교사는 자포자기한 듯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는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희망을 주던 교사의 어머니는 “나쁜 놈들이네”라고 하면서도 정작 짐을 싸들고 나서는 소녀를 잡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을 상품화하는 언론은 마구잡이로 사건에 대한 이런저런 기사들을 양산한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새로 생긴 ‘친구’ 역시 소녀의 전화를 외면한다.

인권 유린의 잘못을 저지르는 청소년 무리에서 자신의 아들만을 챙겨 돌아가는 이기적인 어른이 넘쳐나는 사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치기보다 강간당하지 말라고 세뇌해야하는 사회, 성폭행 피해자에 죄책감을 강요하는 사회는 소녀의 반문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사과를 받는데 저는 왜 도망쳐야 하죠?”
제목이자 소녀의 이름과 그녀의 운명을 가혹하게도 내몬 어른들의 세상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만으로도 영화 <한공주>는 ‘좌절유발작’이라 명명할만하다. 소녀의 무덤덤한 감정표현에 어른들이 만들어낸 흉측한 세상은 보다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소녀에게도 꿈이 있었다. 매력적인 목소리와 음악성을 가진 소녀는 유명 기획사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을 만큼 재능이 넘쳤다. 잔혹한 운명을 부각시키는 이름처럼, 지은 죄도 없이 얼굴을 당당하게 공개할 수 없는 소녀의 현실에서는 무겁고도 안타까운 재능임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혹시나 살고 싶어질까 봐”, 그 끝에 벽이 있었다

이에 정작 소녀의 꿈은 수영장 25m 완주다. 혹시나 살고 싶어질까 봐 열심히도 배운 수영이었다. 다리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친구의 모습에서 미래의 자신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나 살고 싶어질까 봐’라는 수영을 배우는 이유는 덤덤하게만 보이는 소녀의 절망과 상처가 얼마나 깊고도 아픈지를 호소한다.

소녀의 꿈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한강다리에 소녀가 끌던 여행 가방이 시리게도 남겨져 있었고 물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진 소녀가 있었다. 현실인지 환영인지, 소녀의 미래는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졌다.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에 이은 <한공주>라는 영화 속 소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어른들을 온전히 믿었던 아이들에 교복만 봐도 코끝이 찡해올 지경이다. 미화나 희망의 메시지도 없이 현실 그 자체를 담담하게도 담아낸 <한공주>는 명백한 ‘좌절유발작’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 소녀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기꺼이 보듬어야할 피해자이자 희생자임을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녀가 새로사귄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던 “그 끝은 벽이야”라는 대사가, 그 후로도 오래도록 짙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기도 하다. 

  • Add to favorites
  • Facebook
  • Twitter
  • Google Bookmarks
  • email
  • PDF
  • Print
  • MySpace
  • del.icio.us
  • Mixx
  • Yahoo! Buzz
  • RSS

text by 허미선 기자 hurlkie@empal.com